● 1999년 6월 17일 설립 25주년 기념 단행본 〈한국갤럽의 어제와 오늘〉에서 발췌
한국갤럽과 나의 인연
- Norman Webb 前 Gallup International 사무총장
내가 처음 한국갤럽을 방문할 당시(1978년) 한국갤럽은 Korea Survey Polls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Gallup International의 회원으로 가입하려고 신청을 한 상태였다. 나는 회사의 회원 가입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NRC(Nippon Research Center)의 니끼 고오지 씨와 함께 시찰자의 자격으로 한국갤럽을 방문했었다. 그때 서울은 독재자의 지배하에 있었고,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었으므로 내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우선 박무익 소장과 당시 그의 부하 직원이었던 김진국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 김진국 씨는 우리 일행이 공항에서 시내로 접어들자 부인이 첫 아이를 곧 출산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로 인해 박무익 소장 혼자서 저녁시간 동안 우리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 다음날 아침 김진국 씨는 득남의 소식을 전해 주며 증명이라도 하듯 아들의 즉석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를 닮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으나 남자아이라는 것은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꼼꼼하게 시찰을 진행했고 두 가지 인상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갤럽이 그들의 클라이언트와 신문사 중역들에게 얻고 있는 존경심과 시장조사의 과학성에 대한 한국갤럽의 충분한 지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특히 ‘National Multi-Stage Sampling 기법’은 뛰어났는데 내가 전문적으로 알고 있던 부분이기도 해서 정확성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정교한 사항들을 지적했고 박무익 소장은 그것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시찰이 끝나고, (참고로 우리 일행은 이 젊은 회사의 전반적인 우수성에 매우 만족했다) 박무익 소장의 도움을 받아 2~3일간 흥미로운 장소들을 방문해 볼 수 있었다. ‘경주’라는 그 곳에는 많은 볼거리와 특별한 먹을 것과 마실 것들이 있었다. 첫날 우리는 아침 일찍 차로 이동했다. 박무익 소장은 내가 선물한 레미 마틴(Remy Martin)을 권했는데, 그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건어물을 안주 삼아 레미 마틴을 마셔 보았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전형적인 한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박무익 소장은 우리에게 ‘해장국’이라 불리던 음식을 ‘소주’와 함께 먹도록 권했는데, 마늘과 매운 고추장으로 간을 한 해장국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불교의식에 쓰이는 아주 커다란 종이 있던 공원을 방문했으며 그 곳에서 한국 전통 결혼식을 올리는 많은 신혼부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전통 혼례복을 입고 있었는데 나는 한복을 입은 한국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매우 놀랐다. 계속해서 불교 사원과 장엄한 왕관이 있는 신라시대 왕들의 무덤을 구경했다. 박무익 소장은 친절하게도 내게 왕관 모조품을 선물해 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것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신문사 편집장들과 함께 한 한정식 식당에서의 일이다. 내가 그 곳의 한 친절한 남자 종업원이 제공한 아름다운 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데 어려움을 겪자, 그것을 눈치 챈 박무익 소장이 나무 젓가락을 가져다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런던의 중식당과 한국에 오기 전에 머물렀던 일본에서 나무젓가락의 사용법을 익혔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1979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개최된 Gallup International 정기총회에서 한국갤럽(그 당시 Korea Survey Polls)은 회원으로 추천을 받았고, Gallup International의 한국을 대표하는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그날 회원들이 식사를 하던 식당에 박무익 소장이 예정에 없이 National dress(한복)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는 회원이 된 사실에 매우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저녁 모임에 참석했던 모든 여성들의 손금을 봐 주기도 했다!
그 이후로 한국갤럽과 박무익 소장은 활발한 활동과 성실한 회원으로 존경을 받았고 다른 회원들과 우정을 쌓아 나갔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뜬 조지 갤럽(G. Gallup) 박사는 이에 감명을 받아 ‘Gallup Korea’라는 이름을 박무익 소장에게 선사하였다. 그리고 존경의 표시와 교육의 목적으로 조지 갤럽 박사의 저서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하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일은 한국갤럽이 했던 국제조사다. 조사 내용은 올림픽이 자국에서 열린다고 가정했을 때 그 나라 국민들의 관심도를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한국갤럽은 세계 각국 회원들을 통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갤럽은 나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당시 진보주의자였던 고르바초프의 통치 하에 있던 모스크바에서도 조사를 실시했다. 매우 뛰어난 사회조사연구소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의 조사 경험이 전혀 없었던 Institute of Sociology와 계약을 맺고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결과가 서울로 전달되었다.
이 조사는 나와 한국으로서는 당시 USSR에서 행해진 최초의 여론조사였기 때문에 성과에 매우 흡족해 했다. 그때 Institute of Sociology의 한 인원이 현재 Russia Romir의 장으로서 Gallup International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한국갤럽은 미국과 유럽에서 시장조사가 번성한 지 한 세대 후에, 그리고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공업국가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조사 방법들이 이미 서양에서 시도되었고 증명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방법들이 한 국가에서, 특히 한국처럼 서양과는 다른 문화, 언어, 사회제도, 통계자료 등을 갖춘 국가로 옮겨질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갤럽이 성공적으로 해 온 것 같이 연구소 자체 내에서 개발한 것 이외의 해외 기술과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문성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내가 퇴직하던 해인 1995년도에는 한국갤럽 주최로 서울에서 Gallup International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한국 주최 측 관계자들은 모든 참석자에게 아낌없는 대접과 보살핌을 제공해 주어 멋진 모임이 될 수 있었다.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한국갤럽에서는 나에게 한국의 여론조사에 대한 자문을 구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기꺼이 조언을 해 주었으며 한국갤럽은 이를 신중히 받아들였다.
이 모든 것들 중 한국갤럽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인상은 내가 처음 한국갤럽을 방문한 후 20여 년간, 한국 전반이 그랬듯이 한국갤럽이 이룩한 성장과 발전에 관한 부분이다. 처음 한국갤럽이 Gallup International의 회원이 되었을 때 회사의 연간 총 매출액은 20만 불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800만 불이나 된다니 얼마나 큰 성장인가!
마지막으로 한국갤럽 25년간의 성과에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향후 25년간의 성장과 성공적인 번영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