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발행 단행본 〈조사인으로 살다: 박무익 회고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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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한국갤럽 제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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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시즌이 되면 출마한 후보들은 당선을 목표로, 조사회사들은 정확한 예측을 목표를 두고 매진한다. 2007년은 내가 선거여론조사를 시작한 지 만 20년, 대통령 선거로는 다섯 번째였다. 그리고 한국갤럽이 여론조사 결과로 특정 후보를 깎아내리거나 띄우려 한다는 명예롭지 못한 오해와 맞닥뜨린 첫해다. 30년 넘게 지켜온 회사의 명예가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 혹독하게 체험한 기간이기도 했다.
첫 시련은 2007년 초 야후(Yahoo)-한국갤럽 제휴에서 시작됐다. 나의 승인 아래 진행된 일이지만, 그 실무에는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기에 다음 중 상세한 부분은 당시 담당자들의 기록을 참고했다.
한국갤럽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서부터 인터넷조사가 기존 전화조사를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 수는 1997년 164만 명에서 1999년 1,000만 명을 넘어섰고 2000년 말에는 2,0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급증하던 때였다. 1999년 당시 인터넷포털 1위 다음과 제휴 논의를 시작했고, 이듬해 5월 한 달간 전국 만 20세 이상 1만여 명 패널을 모집했다. 당장 선거 예측이나 일반 기업체 의뢰 조사 활용보다는 기존 오프라인조사와 비교 연구 목적이 우선이었다.
자발적으로 가입한 패널은 무작위 추출된 응답자들과 매우 다른 특성을 띤다. 성, 연령, 지역, 직업 등의 조건을 동일하게 통제하더라도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입장에는 양 집단 간 차이를 보인다. 패널 조사의 모집단 대표성 문제를 보정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다양한 성향 점수(propensity score) 가중 연구가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었다.1)
2002년 제1회 지방자치 선거 때는 인터넷포털 다음과 야후 코리아(이하 야후), 한국갤럽 자체 패널(갤럽패널)을 대상으로 5천여 명 이상 규모의 선거 사전, 사후 인터넷조사를 했다. 이후로는 자체 패널을 중심으로 선거 조사 연구를 이어갔으나, 10만 명 규모로도 전국 16개 시도 단위 분석까지는 무리였다.
2006년 12월, 인터넷포털 야후가 2007 대선 관련 특별 사이트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그중 여론조사 부분은 우리와 공동 운영했으면 한다는 제안을 해왔다. 선거 관련 인터넷조사에 참여할 패널 모집이나 조사 비용은 야후가 부담하고 한국갤럽은 패널 모집과 조사 설계, 결과 분석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조건이었다.
우리 연구원들은 최소 20만 명, 최대 32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터넷조사로 전례 없는 다채로운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사실 야후와의 제휴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데이터뿐이었고 금전적 수익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야후 패널로 조사할 주제 선정, 진행 과정 모니터링, 결과 분석에만 중견급 이상의 연구원 두어 명이 일 년간 투입될 터였다. 나는 인터넷에 아주 능숙한 세대는 아니지만,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조사업계는 이미 인터넷조사가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기에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업무 제휴를 허락했다.
2007년 2월 초, 야후는 한국갤럽과 독점 제휴로 그달 6일부터 25일까지 총 32만 명의 패널을 모집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리고 야후의 원래 일정에 따라 3월 14일 첫 조사를 감행했다. 조사는 16일까지 진행했으나 결과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고, 그 뒤 야후가 공식 입장을 표명한 3월 28일 저녁까지 양사는 침묵했다. 여기까지가 세상에 알려진 사실의 전부다.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여러 이야기와 숫자는 모두 추측이고 허구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때 말하지 못했던 한국갤럽의 속사정,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한국갤럽이 총 32만 명이라는 대규모 패널을 1차 조사 시작 전에 모집하려 했던 이유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이념 성향에 쏠림 없는 일반적인 네티즌들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연말까지 자연적으로 이탈하는 패널을 고려할 때 절반인 16만 또는 1/4인 8만 명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면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야후 측은 32만까진 어렵겠지만 16만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야후의 목적은 대선 관련 사이트를 통해 방문자 수와 조회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한국갤럽의 목적은 대규모 패널에서 정교한 데이터를 얻는 것이었다. 어쩌면 양사의 목적은 애초부터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07월 1월 실무자 협의를 통해 제휴 범위를 확정하고 패널 모집 준비에 돌입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예상보다 진척이 더뎠다. 패널 현황을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관리자용 메뉴나 실제 조사에 쓸 질문지, 분석 내용을 보기 쉬운 인포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문제 등에 대한 협의가 조금씩 늦어졌다.
무엇보다 2월 중 모집한 패널 수가 목표 규모에 턱없이 부족한 점이 양사 간 가장 큰 쟁점이었다.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우리는 야후에 대선 사이트 오픈 시기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야후는 패널을 추가로 확보하려면 좀 부족하더라도 1차 조사를 계획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사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야후는 우리의 최종 승인 없이 3월 14일 첫 조사를 시작하고 메일로 통보해왔다.
우리는 조사가 시작된 후 해당 사이트를 보고서야 조사 대상 선정, 참여 방식, 조사 제목 표기, 질문지 등 여러 부분에서 원래의 기획 의도와 어긋남을 알게 됐다. 계획대로라면 야후의 조사 진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우리는 해당 사이트에서 수정되어야 할 사항들을 야후에 알렸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다.
그사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특정 후보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야후-한국갤럽 대선 조사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올라왔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널 가입과 조사 참여를 독려한다면 그 패널이나 조사 데이터는 이미 오염되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1차 조사를 통해 세세한 질문의 내용도 노출됐다. 불길한 징조였다.
그때까지 모집된 패널이나 1차 조사로 수집된 데이터의 현황을 알려달라고 야후에 요청했으나, 그마저도 원활치 않았다. 3월 16일 조사 종료. 응답 완료자 수 5,700여 명.
우리는 그 숫자에 망연자실했다. 야후가 왜 그토록 패널 모집 현황이나 조사 진행에 대한 자료를 쉽게 공개하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2월 한 달간 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 관련 패널 모집 홍보, 인지도 높은 두 회사의 독점 제휴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해서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은 숫자였다. 패널 가입을 촉진한다는 미명 하에 누구나 가입 즉시 조사에 응답할 수 있게 구성된 사이트였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초라한 숫자.
응답자의 성별, 연령별, 지역별 분포가 고르다면 어떻게든 분석을 시도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집된 데이터의 상태는 그럴 의욕조차 일지 않을 정도였다.
3월 17일과 18일, 우리는 향후 대책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를 요청했지만 야후는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19일 오후까지 야후 대선 사이트에는 1차 조사 결과 발표 일정이 공지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원래 기획 의도와 달리 진행된 1차 조사 데이터 처리와 분석이 불가함을 야후에 통보했다. 그리고 3월 20일, 야후-한국갤럽은 대선 관련 제휴 관계를 파기하는 데 합의했다. 야후는 내부 입장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국갤럽이 먼저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3월 16일에 종료한 조사 결과의 발표가 늦어지자 사실을 확인하려는 기자들과 일반인의 문의가 빗발쳤다. 인터넷에는 온갖 억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가장 악의적인 루머는 당시 정기적으로 발표하던 조선일보-한국갤럽 정치지표에서는 이명박 후보 지지도가 40% 이상, 박근혜 후보 지지도는 20%선인데 반해, 야후-한국갤럽의 인터넷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앞서는 결과가 나와 이를 은폐하기 위해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정 후보를 위한 여론몰이용 기획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도대체 우리가 조사 결과의 분석과 발표를 거부해서 얻을 것이 조사회사로서의 공신력 훼손 이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기존 전화조사와 인터넷조사가 동일한 특성, 동일한 결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면 굳이 야후와 제휴해 대규모 패널을 모집하고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다를 것이란 가정이 있었기에 비교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조사 과정상 필요한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졌어야 했다. 우리에겐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책임 소재야 어디에 있든, 제휴 관계를 파기한 양사의 일원으로서 기다려달라는 야후의 요청을 무시하고 우리 독단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기다림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그만큼 외부의 비난도 거세졌다.
3월 28일 저녁, 조사 종료 12일 만에 야후가 사이트를 통해 입장 표명과 함께 사과문을 게시했다. 야후의 내용에 맞춰 우리도 비슷한 문건을 준비했지만,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응답자 수와 조사 진행상 노출된 문제점들은 당시 인터넷포털 야후의 자존심과 위상이 걸린 부분이었다. 야후의 입장 표명에 그 부분은 드러나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겐 결코 특정 후보를 띄우거나 조사 결과를 은폐하기 위해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사안이었다.
야후의 입장을 고려해 그 사실을 모두 제외한다면 어떤 해명도 석연치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의혹을 확대하거나 논란에 더 큰불을 붙이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야후를 무시하고 내밀한 부분을 모두 밝힌다면 양사 간 다툼으로 비화할 우려가 있었다. 나는 평소 조사 결과 아닌 다른 일로 조사회사가 구설에 오르거나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설령 그것이 좋은 일이라 해도 말이다. 한국갤럽은 끝내 침묵을 선택했다.
이것이 2007년 사건의 전말(顚末)이다. 야후-한국갤럽 제휴는 새로운 조사방법과 분석에 관심 많던 젊은 연구원들이 추진했다. 제휴 관계 파기 후 논란은 인터넷상에서만 격렬했다. 당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내 입장에서는 그 여파가 그만큼 크고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내가 인터넷의 생리를 더 잘 알았더라면 대처가 달랐을까?
한국갤럽은 1996년 조사업계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내 인트라넷을 구축했다. 나도 그때부터 인터넷을 써왔고, 2010년부터는 아이폰을 쓴다. 인터넷 뉴스도 보고, 메일도 확인하고, 주식 시세를 체크한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노래도 듣고, 특별한 만남은 반드시 기념 사진으로 남긴다. 하지만 내 생활의 중심은 여전히 인터넷 바깥세상에 있다. 우리 연구원들로부터 인터넷의 ‘핫한’ 이슈나 그곳을 지배하는 정서를 들을 때마다 적잖은 온도 차를 느낀다. 인터넷을 쓴다 해서 다 같은 ‘네티즌’은 아닌 듯하다.
야후-한국갤럽 제휴는 실패했지만, 나는 그 일을 주도한 연구원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조사의 원칙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서 ‘NO’라고 말하는 용기는, 조사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실무에 관여한 우리 연구원들 중 몇은 회사를 떠났고, 몇은 남아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중단된 일이기 때문에 한국갤럽 내에서도 당시 정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야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야후 코리아는 없다. 1997년 한국 시장에 진출해 한때 포털사이트 최강자로 군림했던 야후는 2012년 12월 31일 국내 서비스를 종료하고 철수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혹시라도 이 내용과 관련해 심기가 불편한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사건이라 언젠가는 꼭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당시 우리의 침묵은 조사회사로서 무책임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떤 비난도 기꺼이 수용하겠다. 끝으로 그 일 때문에 혼란을 겪었을 분들께는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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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대한 연구는 2017년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성인 대다수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조사나 스마트폰앱조사를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자, 스마트폰 사용자, 특정 앱을 설치한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는 표본추출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 중에서 응답자를 무작위 추출(random sampling)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때문에 대부분 자발적 가입 패널에 의존한다. 이러한 조사방법은 무작위 접근이 가능한 면접조사나 전화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집단 대표성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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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한국갤럽 제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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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시즌이 되면 출마한 후보들은 당선을 목표로, 조사회사들은 정확한 예측을 목표를 두고 매진한다. 2007년은 내가 선거여론조사를 시작한 지 만 20년, 대통령 선거로는 다섯 번째였다. 그리고 한국갤럽이 여론조사 결과로 특정 후보를 깎아내리거나 띄우려 한다는 명예롭지 못한 오해와 맞닥뜨린 첫해다. 30년 넘게 지켜온 회사의 명예가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 혹독하게 체험한 기간이기도 했다.
첫 시련은 2007년 초 야후(Yahoo)-한국갤럽 제휴에서 시작됐다. 나의 승인 아래 진행된 일이지만, 그 실무에는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기에 다음 중 상세한 부분은 당시 담당자들의 기록을 참고했다.
한국갤럽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서부터 인터넷조사가 기존 전화조사를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 수는 1997년 164만 명에서 1999년 1,000만 명을 넘어섰고 2000년 말에는 2,0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급증하던 때였다. 1999년 당시 인터넷포털 1위 다음과 제휴 논의를 시작했고, 이듬해 5월 한 달간 전국 만 20세 이상 1만여 명 패널을 모집했다. 당장 선거 예측이나 일반 기업체 의뢰 조사 활용보다는 기존 오프라인조사와 비교 연구 목적이 우선이었다.
자발적으로 가입한 패널은 무작위 추출된 응답자들과 매우 다른 특성을 띤다. 성, 연령, 지역, 직업 등의 조건을 동일하게 통제하더라도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입장에는 양 집단 간 차이를 보인다. 패널 조사의 모집단 대표성 문제를 보정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다양한 성향 점수(propensity score) 가중 연구가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었다.1)
2002년 제1회 지방자치 선거 때는 인터넷포털 다음과 야후 코리아(이하 야후), 한국갤럽 자체 패널(갤럽패널)을 대상으로 5천여 명 이상 규모의 선거 사전, 사후 인터넷조사를 했다. 이후로는 자체 패널을 중심으로 선거 조사 연구를 이어갔으나, 10만 명 규모로도 전국 16개 시도 단위 분석까지는 무리였다.
2006년 12월, 인터넷포털 야후가 2007 대선 관련 특별 사이트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그중 여론조사 부분은 우리와 공동 운영했으면 한다는 제안을 해왔다. 선거 관련 인터넷조사에 참여할 패널 모집이나 조사 비용은 야후가 부담하고 한국갤럽은 패널 모집과 조사 설계, 결과 분석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조건이었다.
우리 연구원들은 최소 20만 명, 최대 32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터넷조사로 전례 없는 다채로운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사실 야후와의 제휴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데이터뿐이었고 금전적 수익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야후 패널로 조사할 주제 선정, 진행 과정 모니터링, 결과 분석에만 중견급 이상의 연구원 두어 명이 일 년간 투입될 터였다. 나는 인터넷에 아주 능숙한 세대는 아니지만,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조사업계는 이미 인터넷조사가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기에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업무 제휴를 허락했다.
2007년 2월 초, 야후는 한국갤럽과 독점 제휴로 그달 6일부터 25일까지 총 32만 명의 패널을 모집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리고 야후의 원래 일정에 따라 3월 14일 첫 조사를 감행했다. 조사는 16일까지 진행했으나 결과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고, 그 뒤 야후가 공식 입장을 표명한 3월 28일 저녁까지 양사는 침묵했다. 여기까지가 세상에 알려진 사실의 전부다.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여러 이야기와 숫자는 모두 추측이고 허구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때 말하지 못했던 한국갤럽의 속사정,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한국갤럽이 총 32만 명이라는 대규모 패널을 1차 조사 시작 전에 모집하려 했던 이유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이념 성향에 쏠림 없는 일반적인 네티즌들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연말까지 자연적으로 이탈하는 패널을 고려할 때 절반인 16만 또는 1/4인 8만 명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면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야후 측은 32만까진 어렵겠지만 16만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야후의 목적은 대선 관련 사이트를 통해 방문자 수와 조회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한국갤럽의 목적은 대규모 패널에서 정교한 데이터를 얻는 것이었다. 어쩌면 양사의 목적은 애초부터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07월 1월 실무자 협의를 통해 제휴 범위를 확정하고 패널 모집 준비에 돌입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예상보다 진척이 더뎠다. 패널 현황을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관리자용 메뉴나 실제 조사에 쓸 질문지, 분석 내용을 보기 쉬운 인포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문제 등에 대한 협의가 조금씩 늦어졌다.
무엇보다 2월 중 모집한 패널 수가 목표 규모에 턱없이 부족한 점이 양사 간 가장 큰 쟁점이었다.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우리는 야후에 대선 사이트 오픈 시기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야후는 패널을 추가로 확보하려면 좀 부족하더라도 1차 조사를 계획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사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야후는 우리의 최종 승인 없이 3월 14일 첫 조사를 시작하고 메일로 통보해왔다.
우리는 조사가 시작된 후 해당 사이트를 보고서야 조사 대상 선정, 참여 방식, 조사 제목 표기, 질문지 등 여러 부분에서 원래의 기획 의도와 어긋남을 알게 됐다. 계획대로라면 야후의 조사 진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우리는 해당 사이트에서 수정되어야 할 사항들을 야후에 알렸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다.
그사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특정 후보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야후-한국갤럽 대선 조사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올라왔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널 가입과 조사 참여를 독려한다면 그 패널이나 조사 데이터는 이미 오염되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1차 조사를 통해 세세한 질문의 내용도 노출됐다. 불길한 징조였다.
그때까지 모집된 패널이나 1차 조사로 수집된 데이터의 현황을 알려달라고 야후에 요청했으나, 그마저도 원활치 않았다. 3월 16일 조사 종료. 응답 완료자 수 5,700여 명.
우리는 그 숫자에 망연자실했다. 야후가 왜 그토록 패널 모집 현황이나 조사 진행에 대한 자료를 쉽게 공개하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2월 한 달간 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 관련 패널 모집 홍보, 인지도 높은 두 회사의 독점 제휴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해서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은 숫자였다. 패널 가입을 촉진한다는 미명 하에 누구나 가입 즉시 조사에 응답할 수 있게 구성된 사이트였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초라한 숫자.
응답자의 성별, 연령별, 지역별 분포가 고르다면 어떻게든 분석을 시도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집된 데이터의 상태는 그럴 의욕조차 일지 않을 정도였다.
3월 17일과 18일, 우리는 향후 대책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를 요청했지만 야후는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19일 오후까지 야후 대선 사이트에는 1차 조사 결과 발표 일정이 공지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원래 기획 의도와 달리 진행된 1차 조사 데이터 처리와 분석이 불가함을 야후에 통보했다. 그리고 3월 20일, 야후-한국갤럽은 대선 관련 제휴 관계를 파기하는 데 합의했다. 야후는 내부 입장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국갤럽이 먼저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3월 16일에 종료한 조사 결과의 발표가 늦어지자 사실을 확인하려는 기자들과 일반인의 문의가 빗발쳤다. 인터넷에는 온갖 억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가장 악의적인 루머는 당시 정기적으로 발표하던 조선일보-한국갤럽 정치지표에서는 이명박 후보 지지도가 40% 이상, 박근혜 후보 지지도는 20%선인데 반해, 야후-한국갤럽의 인터넷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앞서는 결과가 나와 이를 은폐하기 위해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정 후보를 위한 여론몰이용 기획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도대체 우리가 조사 결과의 분석과 발표를 거부해서 얻을 것이 조사회사로서의 공신력 훼손 이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기존 전화조사와 인터넷조사가 동일한 특성, 동일한 결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면 굳이 야후와 제휴해 대규모 패널을 모집하고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다를 것이란 가정이 있었기에 비교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조사 과정상 필요한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졌어야 했다. 우리에겐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책임 소재야 어디에 있든, 제휴 관계를 파기한 양사의 일원으로서 기다려달라는 야후의 요청을 무시하고 우리 독단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기다림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그만큼 외부의 비난도 거세졌다.
3월 28일 저녁, 조사 종료 12일 만에 야후가 사이트를 통해 입장 표명과 함께 사과문을 게시했다. 야후의 내용에 맞춰 우리도 비슷한 문건을 준비했지만,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응답자 수와 조사 진행상 노출된 문제점들은 당시 인터넷포털 야후의 자존심과 위상이 걸린 부분이었다. 야후의 입장 표명에 그 부분은 드러나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겐 결코 특정 후보를 띄우거나 조사 결과를 은폐하기 위해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사안이었다.
야후의 입장을 고려해 그 사실을 모두 제외한다면 어떤 해명도 석연치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의혹을 확대하거나 논란에 더 큰불을 붙이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야후를 무시하고 내밀한 부분을 모두 밝힌다면 양사 간 다툼으로 비화할 우려가 있었다. 나는 평소 조사 결과 아닌 다른 일로 조사회사가 구설에 오르거나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설령 그것이 좋은 일이라 해도 말이다. 한국갤럽은 끝내 침묵을 선택했다.
이것이 2007년 사건의 전말(顚末)이다. 야후-한국갤럽 제휴는 새로운 조사방법과 분석에 관심 많던 젊은 연구원들이 추진했다. 제휴 관계 파기 후 논란은 인터넷상에서만 격렬했다. 당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내 입장에서는 그 여파가 그만큼 크고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내가 인터넷의 생리를 더 잘 알았더라면 대처가 달랐을까?
한국갤럽은 1996년 조사업계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내 인트라넷을 구축했다. 나도 그때부터 인터넷을 써왔고, 2010년부터는 아이폰을 쓴다. 인터넷 뉴스도 보고, 메일도 확인하고, 주식 시세를 체크한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노래도 듣고, 특별한 만남은 반드시 기념 사진으로 남긴다. 하지만 내 생활의 중심은 여전히 인터넷 바깥세상에 있다. 우리 연구원들로부터 인터넷의 ‘핫한’ 이슈나 그곳을 지배하는 정서를 들을 때마다 적잖은 온도 차를 느낀다. 인터넷을 쓴다 해서 다 같은 ‘네티즌’은 아닌 듯하다.
야후-한국갤럽 제휴는 실패했지만, 나는 그 일을 주도한 연구원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조사의 원칙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서 ‘NO’라고 말하는 용기는, 조사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실무에 관여한 우리 연구원들 중 몇은 회사를 떠났고, 몇은 남아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중단된 일이기 때문에 한국갤럽 내에서도 당시 정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야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야후 코리아는 없다. 1997년 한국 시장에 진출해 한때 포털사이트 최강자로 군림했던 야후는 2012년 12월 31일 국내 서비스를 종료하고 철수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혹시라도 이 내용과 관련해 심기가 불편한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사건이라 언젠가는 꼭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당시 우리의 침묵은 조사회사로서 무책임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떤 비난도 기꺼이 수용하겠다. 끝으로 그 일 때문에 혼란을 겪었을 분들께는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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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대한 연구는 2017년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성인 대다수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조사나 스마트폰앱조사를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자, 스마트폰 사용자, 특정 앱을 설치한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는 표본추출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 중에서 응답자를 무작위 추출(random sampling)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때문에 대부분 자발적 가입 패널에 의존한다. 이러한 조사방법은 무작위 접근이 가능한 면접조사나 전화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집단 대표성이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