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발행 단행본 〈조사인으로 살다: 박무익 회고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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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선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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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저항의 정점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 통계는 집계 주체와 시기에 따라 적잖은 차이가 있으나, 6.25 한국전쟁 이래 최대 희생자를 낸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후 정국은 다시 경색됐다. 계엄사령부는 검열 철폐 투쟁을 선언한 한국기자협회의 주요 인물들을 강제 연행, 구속하는 등 언론에 족쇄를 채웠다. 재야인사 김대중은 구속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가택 연금됐다.
그해 8월 27일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간접선거로 제11대 대통령이 됐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치러진 1981년 2월 선거인단 간접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7년 임기를 끝까지 채웠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반독재 투쟁이 끊이지 않았고,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직선제 개헌과 민주주의 회복’이 화두로 떠올랐다.
야당과 재야 세력은 전두환 대통령의 도덕성과 정통성 결여, 그리고 비민주성을 비판하며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7년 1월 발생한 서울대 학생 박종철 고문치사(拷問致死) 사건은 우리 국민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추모 집회와 정권 규탄대회가 4월 전두환 대통령이 발표한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호헌 조치와 연결되어 6월 항쟁,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돌멩이와 최루탄으로 도심은 연일 몸살을 앓았다. 경찰력이 마비되자 정부는 한때 군 투입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온건론이 우세했다.
여론에 비로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정부는 직선제 개헌안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10월 27일 국민 투표에서 93.1% 찬성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확정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은 12월 16일로 정해졌다.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은 6.29 선언을 한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과거 공화당 총재를 역임한 김종필도 출마 선언을 했다. 재야 측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반정부 투쟁을 해온 김대중과 김영삼 두 사람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어렵게 되찾은 직선제로 군부가 아닌 문민정부를 세워 보겠다는 국민의 바람은 강했다. 누가 출마하더라도 당선은 확정적이었다. 다만 둘 중 누가 양보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1987년 가을은 수십 년간 되뇌어온 ‘군부독재 타도’보다 ‘양김(兩金) 단일화’가 더 큰 화두였다. 9월 18일 민주당 의원들의 단일화 촉구 서명이 시작됐고, 24일부터는 100만인 서명 운동이 벌어졌다. 10월 23일 단일화 서명파 의원 11명이 김대중 민주당 고문을 방문해 단일화 대안을 요구했으나, 김 고문은 여러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단일화는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 홍사덕 의원이 한국갤럽에 김대중-김영삼 단일화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고 들었지만, 실행되지는 못했다. 여론조사로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룬 첫 사례는 이로부터 15년 뒤인 2002년, 노무현-정몽준이다.
6?29 선언은 장기간의 언론 통제, 각종 정치 활동 금지법 등을 일거에 허물었다. 택시 기사들부터 대학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정치 비평이 쏟아졌다. 국민의 관심이 대선으로 모이며 모의투표도 유행했다. 대학에서는 총학생회 주관으로, 기업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창회나 향우회는 물론 룸살롱이나 포장마차에서도 모의투표가 이뤄졌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도 정경 유착 관계가 존재하지만, 당시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어느 후보에게 후원금을 내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가는 기업들의 중요 관심사였다. 당락(當落)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론조사’란 이름만 빌린 주먹구구식 집계가 횡행했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은 1987년 9월 15일 11면에 재벌 기업들의 사내 여론조사 실태를 보도했다. 다음은 해당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한국갤럽은 6.29 선언 다음 날부터 조사를 시작해 그 결과를 7월 초 언론에 발표했다. 당시로써는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유일한 조사회사로 지면에 오르내리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다방에서건, 술집에서건, 직장에서건 모의투표에 참여해 본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과를 더 신뢰했다.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조지 갤럽 박사의 말에 용기를 얻어, 때마침 회복된 직선제와 문민정부에 대한 열망에 힘입어 나는 선거 예측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정확히 맞출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었다. 만일 틀린다면 큰 망신일뿐더러 1974년부터 13년간 쌓아온 마케팅조사에 대한 신뢰마저 잃을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나의 첫 시도가 실패할 경우 한국 정치 민주화 과정에 제대로 된 여론조사 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었다.
특히 선거 예측을 하려면 대충 맞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 큰 부담이었다. 선거 예측 결과는 선거 종료와 동시에 발표해야 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이면 바로 실제 선거 결과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조사의 정확성을 평가받는 것이다. 그때까지 주로 해온 마케팅조사에는 명료하게 비교할 수 있는 기준치가 없었다. 갤럽 인터내셔널을 통해 조사 선진국들의 여러 선거 예측 사례를 접했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 사회문화적 상황 때문에 외국의 성공한 접근법이 한국에서 유효할 것인가도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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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선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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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저항의 정점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 통계는 집계 주체와 시기에 따라 적잖은 차이가 있으나, 6.25 한국전쟁 이래 최대 희생자를 낸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후 정국은 다시 경색됐다. 계엄사령부는 검열 철폐 투쟁을 선언한 한국기자협회의 주요 인물들을 강제 연행, 구속하는 등 언론에 족쇄를 채웠다. 재야인사 김대중은 구속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가택 연금됐다.
그해 8월 27일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간접선거로 제11대 대통령이 됐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치러진 1981년 2월 선거인단 간접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7년 임기를 끝까지 채웠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반독재 투쟁이 끊이지 않았고,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직선제 개헌과 민주주의 회복’이 화두로 떠올랐다.
야당과 재야 세력은 전두환 대통령의 도덕성과 정통성 결여, 그리고 비민주성을 비판하며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7년 1월 발생한 서울대 학생 박종철 고문치사(拷問致死) 사건은 우리 국민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추모 집회와 정권 규탄대회가 4월 전두환 대통령이 발표한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호헌 조치와 연결되어 6월 항쟁,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돌멩이와 최루탄으로 도심은 연일 몸살을 앓았다. 경찰력이 마비되자 정부는 한때 군 투입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온건론이 우세했다.
여론에 비로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정부는 직선제 개헌안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10월 27일 국민 투표에서 93.1% 찬성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확정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은 12월 16일로 정해졌다.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은 6.29 선언을 한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과거 공화당 총재를 역임한 김종필도 출마 선언을 했다. 재야 측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반정부 투쟁을 해온 김대중과 김영삼 두 사람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어렵게 되찾은 직선제로 군부가 아닌 문민정부를 세워 보겠다는 국민의 바람은 강했다. 누가 출마하더라도 당선은 확정적이었다. 다만 둘 중 누가 양보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1987년 가을은 수십 년간 되뇌어온 ‘군부독재 타도’보다 ‘양김(兩金) 단일화’가 더 큰 화두였다. 9월 18일 민주당 의원들의 단일화 촉구 서명이 시작됐고, 24일부터는 100만인 서명 운동이 벌어졌다. 10월 23일 단일화 서명파 의원 11명이 김대중 민주당 고문을 방문해 단일화 대안을 요구했으나, 김 고문은 여러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단일화는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 홍사덕 의원이 한국갤럽에 김대중-김영삼 단일화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고 들었지만, 실행되지는 못했다. 여론조사로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룬 첫 사례는 이로부터 15년 뒤인 2002년, 노무현-정몽준이다.
6?29 선언은 장기간의 언론 통제, 각종 정치 활동 금지법 등을 일거에 허물었다. 택시 기사들부터 대학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정치 비평이 쏟아졌다. 국민의 관심이 대선으로 모이며 모의투표도 유행했다. 대학에서는 총학생회 주관으로, 기업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창회나 향우회는 물론 룸살롱이나 포장마차에서도 모의투표가 이뤄졌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도 정경 유착 관계가 존재하지만, 당시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어느 후보에게 후원금을 내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가는 기업들의 중요 관심사였다. 당락(當落)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론조사’란 이름만 빌린 주먹구구식 집계가 횡행했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은 1987년 9월 15일 11면에 재벌 기업들의 사내 여론조사 실태를 보도했다. 다음은 해당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 지난주 ㄱ재벌 기획실에서는 회사 내 관리직 사원 220여 명을 상대로 현재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4명 중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회사의 설문지에는 ▲당신은 누구를 지지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지지하는가 ▲이번 대통령 선거는 2파전인가, 3파전인가, 또는 4파전인가 등 17개 문항이 들어 있었다. 또 막강한 정보망을 가진 ㄴ재벌도 지난달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설문조사를 회사원 3백여 명을 상대로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조사에 응한 직원을 출신지역별, 학력별, 성별 등으로 분류, 응답 결과를 분석해 회사 고위층에 보고하기도 했다. |
한국갤럽은 6.29 선언 다음 날부터 조사를 시작해 그 결과를 7월 초 언론에 발표했다. 당시로써는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유일한 조사회사로 지면에 오르내리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다방에서건, 술집에서건, 직장에서건 모의투표에 참여해 본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과를 더 신뢰했다.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조지 갤럽 박사의 말에 용기를 얻어, 때마침 회복된 직선제와 문민정부에 대한 열망에 힘입어 나는 선거 예측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정확히 맞출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었다. 만일 틀린다면 큰 망신일뿐더러 1974년부터 13년간 쌓아온 마케팅조사에 대한 신뢰마저 잃을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나의 첫 시도가 실패할 경우 한국 정치 민주화 과정에 제대로 된 여론조사 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었다.
특히 선거 예측을 하려면 대충 맞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 큰 부담이었다. 선거 예측 결과는 선거 종료와 동시에 발표해야 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이면 바로 실제 선거 결과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조사의 정확성을 평가받는 것이다. 그때까지 주로 해온 마케팅조사에는 명료하게 비교할 수 있는 기준치가 없었다. 갤럽 인터내셔널을 통해 조사 선진국들의 여러 선거 예측 사례를 접했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 사회문화적 상황 때문에 외국의 성공한 접근법이 한국에서 유효할 것인가도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