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6월 17일 설립 40주년 기념 단행본 〈한국갤럽의 어제와 오늘〉에서 발췌
한국 사회조사사(社會調査史)에서 ‘한국갤럽’의 의미
-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1974년 한국에서 최초로 조사 전문회사가 출범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의 한국갤럽조사연구소다. 한국갤럽은 1980년대 중반까지 사회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국내에서 유일한 조사 전문회사였다. 한국갤럽은 조사업계뿐만 아니라 조사연구를 다루는 학계나 언론계를 포함하여 사회적으로도 기여한 바가 크다. 조사업계에서는 한국갤럽을 ‘조사 전문가 사관학교’라고도 지칭한다. 한국갤럽에 한 때 몸담고 조사 관련 지식과 지혜를 습득한 많은 전문가들이 창업을 해 조사회사를 열기도 하고, 연구기관, 언론사, 기업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조사 분야의 외연을 넓혀 나갔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의 여론조사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1946년 4월 동아일보 사설에서 여론조사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최초로 나타난다. 1950년 2월에는 경향신문이 길거리에서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대통령제로부터 내각제로의 개헌에 대한 의견을 묻는 조사를 시행한 기록이 있다. 조사는 매우 초보적이었고, 응답자 선정도 편의표본추출 방식에 의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여론조사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1960년에 이르러 정부도 국무원 사무국 주관으로 당시의 주요 현안에 대해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를 시행하였다. 그 후 일부 신문에서 중요 사회적 쟁점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예컨대, 1963년도 경향신문이 구독자 대상으로 실시한 대통령 후보 선호도 조사나, 동아일보가 주민등록표에서 추출한 서울시민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정이양에 대한 여론조사가 눈에 띈다.
한편, 학계에서의 사회조사는 사회학이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작고하신 서울대 사회학과 이만갑 교수는 1949년에 서울 종로와 충무로의 가게를 대상으로 조사하였고, 이것이 학문영역에서는 최초의 사회조사로 기록되고 있다. 1958년에는 좀 더 체계화된 질문지를 사용하여 경기도 광주 및 용인의 6개 마을에서 농촌조사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는 1960년에 〈한국농촌의 사회구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이 책은 조사기법을 사용하여 작성된 국내 최초의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사회조사학계는 이만갑 교수를 제1세대 학자로 평가하고 있으며, 제2세대, 3세대 학자들은 모두 이만갑 교수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도 대부분의 사회조사는 연구책임자인 교수가 중심이 되어 대학 재학생들을 조사원으로 많이 활용하였었다. 필자도 대학재학 때인 1969년과 1971년에 조사원으로 서울 시내 및 지방도시에까지 가서 가구방문, 개별 면접한 경험이 있다. 사회학과 학생들은 사회조사 실습 차원에서 많이 참여하였으며, 조사수당도 아르바이트로는 괜찮은 편이었다. 한편, 이때 당시 조사원에게 교육을 하기는 했지만 숙련도를 갖추게 하기에는 부족했고, 자연스레 조사에서 미숙한 면이 많이 나타났다. 특히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나 응답대상에 대해 대학생 조사원들이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당시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연구자들이 직접 실사를 하지 않고, 조사 전문회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연구자들도 실사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국갤럽이 바로 그 선구적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이제 실사는 조사 전문회사로 넘기고 대학 연구소는 조사 결과를 학술적으로 분석하는 쪽에 전념함으로써 어느 정도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현장에서 실사의 경험이 바탕 되지 않으면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맞는 사회조사 방법의 발전을 위한 현실성 있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 학계와 업계는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활동해야 하리라 본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갤럽의 활동에 대해 내 자신이 잘 알지 못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박무익 회장을 한국갤럽 집무실에서 처음 만나 뵙고, 조사회사가 수행하는 실사에 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이때 옴니버스 조사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한국갤럽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은 1999년 사회과학 및 통계학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한국조사연구학회가 출범하면서다.
이 학회는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조사업계 전문가들이 자리를 함께 하여 조사연구의 학문적 바탕과 실용성을 접합하고, 여러 학문들 간에 교류를 통해 조사 방법론의 발전과 확산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그 일환으로 한국갤럽과 박무익 회장의 재정적 지원으로 2003년에 한국갤럽학술논문상과 이듬해 학위논문상을 만들어 이 분야의 우수논문을 시상하기 시작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갤럽 학술논문상과 학위논문상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크게 높아졌으며, 또한 수상을 매우 영예롭게 여기게 되었다. 한국조사연구학회는 이것이 가능하도록 터전을 닦아 주신 박무익 회장께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제 외형으로는 한국갤럽을 앞질러 나가는 회사들이 없지 않지만, 한국갤럽은 한국 조사업계의 대명사처럼 세간에 알려져 있고, 조사의 영역을 대중화하는 데 큰 공로가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본다. 이 과정에서 이 분야를 개척해나간 박무익 회장의 기여와 비중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조사회사들이 등장하면서 이들 간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일부라 믿고 싶지만, 조사회사의 기본 윤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이는 곳도 없지 않았다. 또한 사회여론조사가 지적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조사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조사비용을 둘러싼 발주처의 적절치 않은 조처로 조사의 질을 낮추는 행태도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한국갤럽은 사회여론조사 분야에서 정도(正道)를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한국갤럽 출범 40년을 축하하면서, 앞으로도 조사 학계 및 업계의 큰 형으로서 이 분야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과 변함없는 기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