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발행 단행본 〈조사인으로 살다: 박무익 회고록〉에서 발췌
──────────────────────
갤럽 인터내셔널
──────────────────────
갤럽 인터내셔널(Gallup International)은 조지 갤럽 박사가 1947년 5월 ‘조사를 통한 사회 발전과 조사기법의 개발’이라는 슬로건 아래 창립했다. 당시 세계 최대 국제 조사기구1)로 , 기본 정신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를 바탕으로 갤럽 인터내셔널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매년 ‘End of Year Poll’이라는 공동조사를 해왔다. 각국 회원사가 연말에 자국민을 대상으로 새해 경기, 노사 관계, 세계 평화 전망 등을 조사해 전 세계 언론에 발표한다. 매해 동일한 질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가별 비교뿐 아니라 장기 추세 비교 자료로도 활용 가치가 높다. 한국갤럽은 1979년부터 이 조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자체 제작하는 연하장에도 ‘End of Year Poll’ 조사 결과를 싣고 있다.
매년 1~2회 개별 이슈에 관한 조사도 한다. 인간 가치관 조사, AIDS 인식 조사, UN 활동 평가, 아프가니스탄 침공 및 9.11 세계 무역센터 테러 사건, 세계 경제 위기, 일본 대지진 후 원자력발전 관련 인식,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이미지, 가장 최근 조사로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세계인의 시각 등을 꼽을 수 있다.
조지 갤럽 박사의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갤럽 인터내셔널 가입 절차는 까다롭고 복잡했다. 1단계, 여러 가입 신청 서류와 함께 갤럽 인터내셔널 정책위원회에 조사 결과 보고서 영문 번역본 3부를 제출한다. 2단계, 인접국 회원이 신청사를 직접 방문해 업무 현황을 파악하고 실사(實査) 결과를 보고한다. 3단계, 갤럽 인터내셔널 전 회원이 모이는 연례회의에 참석해 자국의 조사업계 현황과 자사에 대해 브리핑을 한다. 만약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 가입 절차가 이듬해로 자동 연기된다. 이 회의에서 전 회원이 만장일치로 신규 회원 가입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나는 1978년 가을 서류와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어 ‘일본리서치센터(NRC)’의 니키 고우지(二木宏二) 사장이 한국을 직접 방문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9년 3월 갤럽 인터내셔널의 31개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호주 연례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
회의 참석은 갤럽 인터내셔널 가입을 위한 강제 조건이기도 했지만, 글로만 봐왔던 세계적 권위자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더없이 기뻤다. 그해 회의에는 갤럽 박사와 표본조사 이론 확립에 크게 기여한 크로슬리(Crossley) 박사, 케임브리지대의 웹(Webb) 및 헬드(Heald) 교수, 스타펠 척도의 고안자인 스타펠(Stapel) 박사, 수리사회학자인 제테르베르그(Zetterberg) 박사 등의 석학들이 참석했다.
명성과 달리 인자하고 소박한 할아버지 느낌의 갤럽 박사처럼, 회원국 대표들이 모두 참석한 ‘투게더 파티’ 또한 소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한국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는 공식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연설문도 최대한 격식을 갖춰 준비했지만, 전혀 딴판이었다. 다음 날 연설에서 나는 ‘신사, 숙녀 여러분’ 같은 겉치레 말을 모두 생략했다.
모든 회의는 잡탕 영어의 향연장이었다. 스페인식, 독일식, 포르투갈식, 쿠웨이트식, 일본식 영어가 상이한 악센트로 거침없이 소통됐다. 국제회의가 처음이라 내심 겁먹었던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식 영어로 스스럼없이 대화에 동참했다.
회의는 각국 대표들이 돌아가면서 주제 발표를 하고 그에 대한 질의, 토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본회의는 매일 오전, 오후로 나뉘어 열렸다. 오전에는 각자 자기 나라 및 조사기관이 당면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과 상호 협력 방법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다. 나도 이 자리에서 한국의 조사 현황을 소개했다.
오후에는 선거여론조사에 관한 주제로 1978년에 선거를 치른 브라질, 서독, 스위스 등 6개국 회원들의 발표가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예측 오차를 보인 브라질 대표는 국토가 넓다는 점, 전체 인구의 50%가 5개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지역별 인구비례 무작위표본추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브라질처럼 빈부차가 극심한 나라에서는 소득에 따라 정치 성향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선거 예측에 소득을 변수로 추가하는 표본추출법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반대로 미국갤럽은 그때까지 12회의 선거 예측에서 평균 1.2%포인트, 최근 4회 예측에서 평균 0.8%포인트 오차 기록을 소개하며 그간의 조사 진행 절차와 변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단순히 당선자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을 되짚어 분석하고 탐구하는 태도야말로 과학적 접근과 초자연적 점술(占術)의 결정적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원 교육과 관련해서는 스웨덴의 제테르베르그 박사가 보여준 교육용 비디오테이프가 인상적이었다. 조사원이 가정을 방문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잘사는 나라들에서는 보통 가정주부들이 시간제로 조사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대생이 조사원으로 일했다.
나도 1978년에 주부들을 조사원으로 활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부 조사원들이 물건을 팔러 온 사람으로 오인되어 대문에서의 거절이 많았다. 설득 끝에 집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응답자가 경계심을 풀지 않아 조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는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판매원의 교묘하고도 집요한 판매가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진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방문판매의 폐해가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를 멀게 해서 결국 조사에까지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2)
갤럽 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인 웹 박사는 유럽 회원국들을 주축으로 한 ‘유럽 옴니버스(European Omnibus)’ 프로젝트 개요와 방법론을 설명했다. EEC3) 국가를 모두 커버하는 그 조사는 표본 8,000명을 대상으로 2개월에 한 번씩 하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1978년부터 EEC 지역에서의 일본 상품 무역 규제에 대처할 목적으로 이 조사를 통해 유럽인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파악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도 그런 조사에 참여해 해외 홍보 활동이나 수출 광고 효과를 높이도록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내 임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참석한 회의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두 개의 큰 성과를 얻었다.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기획된 ‘세계 아동 의식 비교 조사’(8개국 대상)와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조사’(16개국 대상)에 한국을 포함하자는 일본 대표의 제안이 있었고, 이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조사 기금은 일본 정부가 제공하며, 조사 결과는 먼저 그 나라 언론에 발표해도 좋다는 훌륭한 조건이었다. 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갤럽의 표본조사 진행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단서가 전부였다.4) 비교 연구를 위해 이웃나라 조사에도 기꺼이 기금을 할애하여 국가백년대계(國家百年大計)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일본이 약간 부럽기도 했다.
1979년 갤럽 인터내셔널 회의를 주최한 호주 회원사5) ‘The Roy & Morgan Research’는 자사가 최근 도입한 TV시청률 조사방법을 발표했다. 멜버른 시에서 선정한 440가구의 TV에 전송 장치를 부착하고, 이를 그 집 전화와 연결한다. 회사 컴퓨터가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각 가구가 현재 어떤 채널을 보고 있는지 집계한다. 다음 날 아침 담당자는 출근과 동시에 전날 방송사별 시청률 집계표를 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Roy Morgan Research는 직원 수 200명에 IBM 3706) 컴퓨터를 2대나 보유한 회사였다. 국토로는 우리나라의 40배 정도 크기지만, 인구는 우리의 1/3에 불과한 호주에 그렇게 큰 조사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지금은 누구나 개인용 컴퓨터를 쓰고 통계 처리 프로그램도 쉽게 다룰 수 있지만, 1979년 우리나라에는 컴퓨터가 흔치 않았다.
조사 완료된 질문지의 응답 내용을 펀칭한 카드7) 몇 박스를 들고 홍릉에 있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갔다. 도착해서 밤새워 카드를 입력하고, 근처에서 오전 반나절을 기다린 후에나 엄청난 부피의 산출물을 받을 수 있었다. 번거롭고도 지난한 우리 회사의 자료처리 과정을 떠올리며,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갤럽 인터내셔널 호주 회의에서 정식 회원이 됨과 동시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여론조사의 대명사인 ‘갤럽’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독점권을 얻었다. 귀국하자마자 회사명을 KSP에서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개명했다. 한국갤럽이 연례회의를 주최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6년 후다. 1995년 6월, 갤럽 인터내셔널 50여 개국 회원들이 제48차 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다.
─
1) 조지 갤럽 박사 타계 후 소유주와 경영진이 바뀐 미국갤럽이 탈퇴하는 등 조직상 변화를 겪었고 현재는 ‘WIN/Gallup International’로 자리잡았다. ‘WIN’은 Worldwide Independent Network of Marker Research. 2016년 모로코에서 열린 연례회의에는 75개국 회원사가 참석했다.
회원사 75개 중 회사명으로 ‘Gallup’을 쓰는 곳은 파키스탄과 한국 두 나라뿐이다. 파키스탄은 여전히 미국갤럽과 소송 진행 중이고 한국에서는 두 차례 소송에서 모두 내가 이겼다. 한국에서는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Gallup’이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이후 미국갤럽은 한국을 제외한 각국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여론조사보다 조직·인사 컨설팅, 출판 부문에 더 주력하고 있다.
2) 1990년대 이후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제로 일하는 주부들이 전체 조사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요즘은 지나친 텔레마케팅에 대한 거부감이나 보이스피싱 우려 때문에 전화조사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다.
3) 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1957년 벨기에,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6개국이 설립한 국제기구. 1967년 이후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합류. 1993년 유럽 연합(EU)이 발족했고, 2009년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면서 EEC는 해체.
4) 이 조사 결과는 〈한국의 아동과 어머니〉 〈한국 노인의 생활과 의식 구조〉라는 책으로도 펴냈다. 일본은 1990년대 인구절벽 시대를 맞았다. 1979년 당시 일본이 겪고 있었거나 대비했던 산업화, 핵가족화, 고령화, 청소년 문제 등은 이제 우리의 당면 과제가 됐다.
5) 현재 호주 회원사는 ‘Colmar Brunton’이다.
6)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출범한 교보문고가 국내 최초로 IBM 370을 도입해 취급 도서 분류와 거래, 대금 지급 업무를 처리한 것이 획기적인 일로 기록되어 있다.
──────────────────────
갤럽 인터내셔널
──────────────────────
갤럽 인터내셔널(Gallup International)은 조지 갤럽 박사가 1947년 5월 ‘조사를 통한 사회 발전과 조사기법의 개발’이라는 슬로건 아래 창립했다. 당시 세계 최대 국제 조사기구1)로 , 기본 정신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 첫째, 1개국에 1개 조사회사만 가입할 수 있다. 둘째, 회원의 위치는 UN처럼 상호 독립적일 것. 즉, 어느 한 회사의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독립성을 인정한다. 셋째, 연례회의는 해마다 각국을 돌아가며 개최하고 새롭게 개발된 조사기법 소개 및 각국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발표하여 조사방법의 발전을 이룩함을 목적으로 삼는다. 넷째, 조사를 통해 인류에 기여하는 사명감을 잊지 않는다. |
이를 바탕으로 갤럽 인터내셔널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매년 ‘End of Year Poll’이라는 공동조사를 해왔다. 각국 회원사가 연말에 자국민을 대상으로 새해 경기, 노사 관계, 세계 평화 전망 등을 조사해 전 세계 언론에 발표한다. 매해 동일한 질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가별 비교뿐 아니라 장기 추세 비교 자료로도 활용 가치가 높다. 한국갤럽은 1979년부터 이 조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자체 제작하는 연하장에도 ‘End of Year Poll’ 조사 결과를 싣고 있다.
매년 1~2회 개별 이슈에 관한 조사도 한다. 인간 가치관 조사, AIDS 인식 조사, UN 활동 평가, 아프가니스탄 침공 및 9.11 세계 무역센터 테러 사건, 세계 경제 위기, 일본 대지진 후 원자력발전 관련 인식,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이미지, 가장 최근 조사로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세계인의 시각 등을 꼽을 수 있다.
조지 갤럽 박사의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갤럽 인터내셔널 가입 절차는 까다롭고 복잡했다. 1단계, 여러 가입 신청 서류와 함께 갤럽 인터내셔널 정책위원회에 조사 결과 보고서 영문 번역본 3부를 제출한다. 2단계, 인접국 회원이 신청사를 직접 방문해 업무 현황을 파악하고 실사(實査) 결과를 보고한다. 3단계, 갤럽 인터내셔널 전 회원이 모이는 연례회의에 참석해 자국의 조사업계 현황과 자사에 대해 브리핑을 한다. 만약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 가입 절차가 이듬해로 자동 연기된다. 이 회의에서 전 회원이 만장일치로 신규 회원 가입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나는 1978년 가을 서류와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어 ‘일본리서치센터(NRC)’의 니키 고우지(二木宏二) 사장이 한국을 직접 방문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9년 3월 갤럽 인터내셔널의 31개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호주 연례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
회의 참석은 갤럽 인터내셔널 가입을 위한 강제 조건이기도 했지만, 글로만 봐왔던 세계적 권위자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더없이 기뻤다. 그해 회의에는 갤럽 박사와 표본조사 이론 확립에 크게 기여한 크로슬리(Crossley) 박사, 케임브리지대의 웹(Webb) 및 헬드(Heald) 교수, 스타펠 척도의 고안자인 스타펠(Stapel) 박사, 수리사회학자인 제테르베르그(Zetterberg) 박사 등의 석학들이 참석했다.
명성과 달리 인자하고 소박한 할아버지 느낌의 갤럽 박사처럼, 회원국 대표들이 모두 참석한 ‘투게더 파티’ 또한 소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한국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는 공식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연설문도 최대한 격식을 갖춰 준비했지만, 전혀 딴판이었다. 다음 날 연설에서 나는 ‘신사, 숙녀 여러분’ 같은 겉치레 말을 모두 생략했다.
모든 회의는 잡탕 영어의 향연장이었다. 스페인식, 독일식, 포르투갈식, 쿠웨이트식, 일본식 영어가 상이한 악센트로 거침없이 소통됐다. 국제회의가 처음이라 내심 겁먹었던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식 영어로 스스럼없이 대화에 동참했다.
회의는 각국 대표들이 돌아가면서 주제 발표를 하고 그에 대한 질의, 토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본회의는 매일 오전, 오후로 나뉘어 열렸다. 오전에는 각자 자기 나라 및 조사기관이 당면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과 상호 협력 방법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다. 나도 이 자리에서 한국의 조사 현황을 소개했다.
오후에는 선거여론조사에 관한 주제로 1978년에 선거를 치른 브라질, 서독, 스위스 등 6개국 회원들의 발표가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예측 오차를 보인 브라질 대표는 국토가 넓다는 점, 전체 인구의 50%가 5개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지역별 인구비례 무작위표본추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브라질처럼 빈부차가 극심한 나라에서는 소득에 따라 정치 성향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선거 예측에 소득을 변수로 추가하는 표본추출법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반대로 미국갤럽은 그때까지 12회의 선거 예측에서 평균 1.2%포인트, 최근 4회 예측에서 평균 0.8%포인트 오차 기록을 소개하며 그간의 조사 진행 절차와 변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단순히 당선자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을 되짚어 분석하고 탐구하는 태도야말로 과학적 접근과 초자연적 점술(占術)의 결정적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원 교육과 관련해서는 스웨덴의 제테르베르그 박사가 보여준 교육용 비디오테이프가 인상적이었다. 조사원이 가정을 방문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잘사는 나라들에서는 보통 가정주부들이 시간제로 조사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대생이 조사원으로 일했다.
나도 1978년에 주부들을 조사원으로 활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부 조사원들이 물건을 팔러 온 사람으로 오인되어 대문에서의 거절이 많았다. 설득 끝에 집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응답자가 경계심을 풀지 않아 조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는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판매원의 교묘하고도 집요한 판매가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진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방문판매의 폐해가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를 멀게 해서 결국 조사에까지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2)
갤럽 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인 웹 박사는 유럽 회원국들을 주축으로 한 ‘유럽 옴니버스(European Omnibus)’ 프로젝트 개요와 방법론을 설명했다. EEC3) 국가를 모두 커버하는 그 조사는 표본 8,000명을 대상으로 2개월에 한 번씩 하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1978년부터 EEC 지역에서의 일본 상품 무역 규제에 대처할 목적으로 이 조사를 통해 유럽인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파악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도 그런 조사에 참여해 해외 홍보 활동이나 수출 광고 효과를 높이도록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내 임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참석한 회의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두 개의 큰 성과를 얻었다.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기획된 ‘세계 아동 의식 비교 조사’(8개국 대상)와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조사’(16개국 대상)에 한국을 포함하자는 일본 대표의 제안이 있었고, 이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조사 기금은 일본 정부가 제공하며, 조사 결과는 먼저 그 나라 언론에 발표해도 좋다는 훌륭한 조건이었다. 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갤럽의 표본조사 진행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단서가 전부였다.4) 비교 연구를 위해 이웃나라 조사에도 기꺼이 기금을 할애하여 국가백년대계(國家百年大計)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일본이 약간 부럽기도 했다.
1979년 갤럽 인터내셔널 회의를 주최한 호주 회원사5) ‘The Roy & Morgan Research’는 자사가 최근 도입한 TV시청률 조사방법을 발표했다. 멜버른 시에서 선정한 440가구의 TV에 전송 장치를 부착하고, 이를 그 집 전화와 연결한다. 회사 컴퓨터가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각 가구가 현재 어떤 채널을 보고 있는지 집계한다. 다음 날 아침 담당자는 출근과 동시에 전날 방송사별 시청률 집계표를 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Roy Morgan Research는 직원 수 200명에 IBM 3706) 컴퓨터를 2대나 보유한 회사였다. 국토로는 우리나라의 40배 정도 크기지만, 인구는 우리의 1/3에 불과한 호주에 그렇게 큰 조사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지금은 누구나 개인용 컴퓨터를 쓰고 통계 처리 프로그램도 쉽게 다룰 수 있지만, 1979년 우리나라에는 컴퓨터가 흔치 않았다.
조사 완료된 질문지의 응답 내용을 펀칭한 카드7) 몇 박스를 들고 홍릉에 있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갔다. 도착해서 밤새워 카드를 입력하고, 근처에서 오전 반나절을 기다린 후에나 엄청난 부피의 산출물을 받을 수 있었다. 번거롭고도 지난한 우리 회사의 자료처리 과정을 떠올리며,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갤럽 인터내셔널 호주 회의에서 정식 회원이 됨과 동시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여론조사의 대명사인 ‘갤럽’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독점권을 얻었다. 귀국하자마자 회사명을 KSP에서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개명했다. 한국갤럽이 연례회의를 주최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6년 후다. 1995년 6월, 갤럽 인터내셔널 50여 개국 회원들이 제48차 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다.
─
1) 조지 갤럽 박사 타계 후 소유주와 경영진이 바뀐 미국갤럽이 탈퇴하는 등 조직상 변화를 겪었고 현재는 ‘WIN/Gallup International’로 자리잡았다. ‘WIN’은 Worldwide Independent Network of Marker Research. 2016년 모로코에서 열린 연례회의에는 75개국 회원사가 참석했다.
회원사 75개 중 회사명으로 ‘Gallup’을 쓰는 곳은 파키스탄과 한국 두 나라뿐이다. 파키스탄은 여전히 미국갤럽과 소송 진행 중이고 한국에서는 두 차례 소송에서 모두 내가 이겼다. 한국에서는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Gallup’이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이후 미국갤럽은 한국을 제외한 각국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여론조사보다 조직·인사 컨설팅, 출판 부문에 더 주력하고 있다.
2) 1990년대 이후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제로 일하는 주부들이 전체 조사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요즘은 지나친 텔레마케팅에 대한 거부감이나 보이스피싱 우려 때문에 전화조사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다.
3) 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1957년 벨기에,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6개국이 설립한 국제기구. 1967년 이후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합류. 1993년 유럽 연합(EU)이 발족했고, 2009년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면서 EEC는 해체.
4) 이 조사 결과는 〈한국의 아동과 어머니〉 〈한국 노인의 생활과 의식 구조〉라는 책으로도 펴냈다. 일본은 1990년대 인구절벽 시대를 맞았다. 1979년 당시 일본이 겪고 있었거나 대비했던 산업화, 핵가족화, 고령화, 청소년 문제 등은 이제 우리의 당면 과제가 됐다.
5) 현재 호주 회원사는 ‘Colmar Brunton’이다.
6)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출범한 교보문고가 국내 최초로 IBM 370을 도입해 취급 도서 분류와 거래, 대금 지급 업무를 처리한 것이 획기적인 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