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발행 단행본 〈조사인으로 살다: 박무익 회고록〉에서 발췌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유감(遺憾)
조지 갤럽 박사는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역설했다. 여론조사는 민심의 흐름과 여론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은 1987년 대선 예측을 필두로, 이후 역대 대통령 직무수행평가를 포함한 정치지표 조사를 해왔고1) 2012년부터는 매주 새로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정치인이 민심을 제대로 알고 정치하도록 하며, 우리 언론이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보도와 객관적 역사 기록을 가능케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지표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 직무수행평가는 지역, 나이, 이념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비판에 견딜 수 있도록 매사 엄중을 기한다. 그러나 제대로 조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석이 그릇되면 정확한 자(尺)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두 대통령을 예로 살펴보자.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퇴임을 앞둔 2013년 2월 18일, 한국갤럽은 지난 5년간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수행평가 결과를 발표했다2). 우리 국민의 24%는 이명박 대통령이 ‘잘했다’, 58%는 ‘잘못했다’고 답했다. 다음 날인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연설을 통해 지난 5년간 자신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고 자평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일 반드시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는 상당히 억울한 듯 보였다.
그 연설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대통령 자신과 주위를 둘러싼 참모들이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노력을 제대로 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質疑應答)이 오가는 자유토론 형식의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라디오 연설은 109회나 진행했다지만, TV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로 원고를 읽고 정해진 질문에만 답하는 것은 쌍방향 소통이라 할 수 없다.
또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가장 잘못한 일을 물은 결과 국민의 34%가 4대강 사업을 꼽았다. 무슨 소린가. 4대강 사업은 무려 20조 원 넘게 들여 추진한 사업이다. 이 대통령 자신은 큰 홍수 예방과 여가 활동 공간 조성이란 편익을 들어 치적(治績)으로 여기는데 국민은 오히려 잘못한 일로 지적한 것이다. 이후 드러난 4대강 사업의 심각한 문제점들은 차치하고 보더라도, 퇴임 시점에서 대통령과 국민의 생각에 그만큼 괴리가 크다는 것은 결국 여론 수렴이나 정책 홍보의 실패란 생각이 들었다.
2013년 2월,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한 달 후인 3월 하순 직무 긍정률은 42%로, 역대 대통령 취임 초기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3).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 한 달 즈음 직무 긍정률은 71%에 달했고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각각 60%, 52%로 박 대통령보다는 높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언론은 저마다 우려와 조언을 섞어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나는 박 대통령 취임 초기 직무 긍정률을 역대 대통령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YS와 DJ는 취임 초기 임명제로 큰 잡음 없이 내각을 구성했고 국민은 기대를 한껏 실어 성원했다. 반면 2013년에는 인사청문회에서 주요 고위 공직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모습이 언론을 뒤덮어 취임 초기 허니문 기간이 사실상 없었다. 박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50%가 인사 난맥을 꼽았다. 상당 부분 인사청문회 디스카운트(discount)가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취임 초기 직무 긍정률은 낮은 편이었지만, 향후 5년 임기 직무 수행 전망 조사에서는 국민의 70% 이상이 ‘잘할 것’이라고 답해 여전히 그에 대한 기대감은 적지 않은 듯했다4).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직무 긍정률이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견됐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당시 국민의 80%는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인식하고 있었고5) 국가 우선 당면 과제로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먼저 꼽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복지만 붙잡고 씨름하며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 같은 생경한 단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 바람과 동떨어진 MB의 4대강 사업 추진과 비슷한 것 같아 걱정됐다.
더 우려되는 점은 대통령 직무수행평가에 신경 쓰는 것을 저속한 인기 영합쯤으로 치부하는 듯한 박 대통령의 태도였다. ‘금은 시궁창에 있어도 역시 금’이라는 식의, 결국엔 알아줄 것이란 극단적 진리주의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에게 보이는 바에 따라 규정된다고 했다. “왜 그 사람을 장관에 임명했나요?”라는 기자 질문에 대변인이 “더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응수하거나, 인사 실책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단 17초 만에 원고를 읽고는 서로 멀뚱멀뚱 바라만 보는 기자회견장은 MB의 기자회견 기피증 이상으로 기괴했다.
그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난 2016년 4분기, 박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거듭 하락해 역대 대통령 최저치를 경신했다. 주말마다 전국적으로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벌어졌고 대학가, 시민단체 등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결국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에 따라 그날 오후부터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됐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한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파문의 중심에서, 박 대통령은 3차에 걸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끝까지 기자의 질문은 받지 않는 일방적 소통으로 일관했다.
민주주의는 정치인이 국민의 관심사와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우선 과제 해결에 집중하며, 그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 국민이 납득하고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무 긍정률은 대통령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를 값싼 포퓰리즘(populism)으로 치부하고 외면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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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질문은 ‘○○○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혹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이며, 긍·부정을 답하지 않은 경우 ‘굳이 말씀하신다면 ‘잘하고 있다’와 ‘잘못하고 있다’ 중 어느 쪽입니까?’라고 1회 재질문한다. 1988년부터 동일 질문 방식, 2점 척도를 적용해왔다.
한국갤럽은 공식 리포트에 ‘잘하고 있다’ 응답 비율을 ‘직무 긍정률’이라고 표기하지만, 언론은 이를 ‘지지율’로 바꿔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다. 엄밀하게 보자면 ‘직무 긍정률’과 ‘지지율’은 다른 의미다. 특정 시점, 특정 사안에 대한 잘잘못을 묻을 경우 평소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은 직무 수행 긍정률보다는 오히려 ‘선호도’와 더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54호(2013년 2월 2주)
3)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60호(2013년 3월 4주)
4)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58호(2013년 3월 2주)
5) 한국갤럽 〈한국인의 경제체감지수–2013년 3월〉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유감(遺憾)
조지 갤럽 박사는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역설했다. 여론조사는 민심의 흐름과 여론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은 1987년 대선 예측을 필두로, 이후 역대 대통령 직무수행평가를 포함한 정치지표 조사를 해왔고1) 2012년부터는 매주 새로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정치인이 민심을 제대로 알고 정치하도록 하며, 우리 언론이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보도와 객관적 역사 기록을 가능케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지표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 직무수행평가는 지역, 나이, 이념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비판에 견딜 수 있도록 매사 엄중을 기한다. 그러나 제대로 조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석이 그릇되면 정확한 자(尺)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두 대통령을 예로 살펴보자.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퇴임을 앞둔 2013년 2월 18일, 한국갤럽은 지난 5년간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수행평가 결과를 발표했다2). 우리 국민의 24%는 이명박 대통령이 ‘잘했다’, 58%는 ‘잘못했다’고 답했다. 다음 날인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연설을 통해 지난 5년간 자신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고 자평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일 반드시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는 상당히 억울한 듯 보였다.
그 연설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대통령 자신과 주위를 둘러싼 참모들이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노력을 제대로 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質疑應答)이 오가는 자유토론 형식의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라디오 연설은 109회나 진행했다지만, TV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로 원고를 읽고 정해진 질문에만 답하는 것은 쌍방향 소통이라 할 수 없다.
또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가장 잘못한 일을 물은 결과 국민의 34%가 4대강 사업을 꼽았다. 무슨 소린가. 4대강 사업은 무려 20조 원 넘게 들여 추진한 사업이다. 이 대통령 자신은 큰 홍수 예방과 여가 활동 공간 조성이란 편익을 들어 치적(治績)으로 여기는데 국민은 오히려 잘못한 일로 지적한 것이다. 이후 드러난 4대강 사업의 심각한 문제점들은 차치하고 보더라도, 퇴임 시점에서 대통령과 국민의 생각에 그만큼 괴리가 크다는 것은 결국 여론 수렴이나 정책 홍보의 실패란 생각이 들었다.
2013년 2월,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한 달 후인 3월 하순 직무 긍정률은 42%로, 역대 대통령 취임 초기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3).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 한 달 즈음 직무 긍정률은 71%에 달했고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각각 60%, 52%로 박 대통령보다는 높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언론은 저마다 우려와 조언을 섞어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나는 박 대통령 취임 초기 직무 긍정률을 역대 대통령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YS와 DJ는 취임 초기 임명제로 큰 잡음 없이 내각을 구성했고 국민은 기대를 한껏 실어 성원했다. 반면 2013년에는 인사청문회에서 주요 고위 공직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모습이 언론을 뒤덮어 취임 초기 허니문 기간이 사실상 없었다. 박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50%가 인사 난맥을 꼽았다. 상당 부분 인사청문회 디스카운트(discount)가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취임 초기 직무 긍정률은 낮은 편이었지만, 향후 5년 임기 직무 수행 전망 조사에서는 국민의 70% 이상이 ‘잘할 것’이라고 답해 여전히 그에 대한 기대감은 적지 않은 듯했다4).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직무 긍정률이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견됐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당시 국민의 80%는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인식하고 있었고5) 국가 우선 당면 과제로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먼저 꼽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복지만 붙잡고 씨름하며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 같은 생경한 단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 바람과 동떨어진 MB의 4대강 사업 추진과 비슷한 것 같아 걱정됐다.
더 우려되는 점은 대통령 직무수행평가에 신경 쓰는 것을 저속한 인기 영합쯤으로 치부하는 듯한 박 대통령의 태도였다. ‘금은 시궁창에 있어도 역시 금’이라는 식의, 결국엔 알아줄 것이란 극단적 진리주의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에게 보이는 바에 따라 규정된다고 했다. “왜 그 사람을 장관에 임명했나요?”라는 기자 질문에 대변인이 “더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응수하거나, 인사 실책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단 17초 만에 원고를 읽고는 서로 멀뚱멀뚱 바라만 보는 기자회견장은 MB의 기자회견 기피증 이상으로 기괴했다.
그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난 2016년 4분기, 박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거듭 하락해 역대 대통령 최저치를 경신했다. 주말마다 전국적으로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벌어졌고 대학가, 시민단체 등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결국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에 따라 그날 오후부터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됐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한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파문의 중심에서, 박 대통령은 3차에 걸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끝까지 기자의 질문은 받지 않는 일방적 소통으로 일관했다.
민주주의는 정치인이 국민의 관심사와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우선 과제 해결에 집중하며, 그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 국민이 납득하고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무 긍정률은 대통령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를 값싼 포퓰리즘(populism)으로 치부하고 외면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__
1)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질문은 ‘○○○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혹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이며, 긍·부정을 답하지 않은 경우 ‘굳이 말씀하신다면 ‘잘하고 있다’와 ‘잘못하고 있다’ 중 어느 쪽입니까?’라고 1회 재질문한다. 1988년부터 동일 질문 방식, 2점 척도를 적용해왔다.
한국갤럽은 공식 리포트에 ‘잘하고 있다’ 응답 비율을 ‘직무 긍정률’이라고 표기하지만, 언론은 이를 ‘지지율’로 바꿔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다. 엄밀하게 보자면 ‘직무 긍정률’과 ‘지지율’은 다른 의미다. 특정 시점, 특정 사안에 대한 잘잘못을 묻을 경우 평소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은 직무 수행 긍정률보다는 오히려 ‘선호도’와 더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54호(2013년 2월 2주)
3)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60호(2013년 3월 4주)
4)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58호(2013년 3월 2주)
5) 한국갤럽 〈한국인의 경제체감지수–201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