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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담(調査談)

한국갤럽, 조사인, 조사 이야기

〈조사인으로 살다〉 선거 조사와 피그말리온 효과
2019/09/04

● 2017년 발행 단행본 〈조사인으로 살다: 박무익 회고록〉에서 발췌

선거 조사와 피그말리온 효과

조사 과정과 결과 해석에 정도(正道)는 없다. 조사회사마다 조사방법이 다르고 같은 결과를 두고도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 결과를 공개할 때는 조사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결과 해석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매일 일정 규모 조사를 하면 매번 새로운 수치가 나온다. 그러나 모든 표본조사에는 오차가 있다. 우리가 상시 조사를 하는 이유는 여론의 장기적인 변화를 추적하기 위함이지, 하루 이틀 지표의 등락폭을 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제와 오늘 일일 지표가 다른 것이 실제 여론의 변화인지, 아니면 단순한 표본조사의 오차에서 비롯한 것인지는 전후 1~2주간 흐름을 잘 살펴야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 관련 중요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는 여러 언론과 조사회사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여론의 반응이 사건 발생 당일 또는 익일보다 최소 사흘 이후에도 지속되는지도 중요하다. 따라서 일일 지표의 소폭 변동에 대해 지나친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오차를 변화로 해석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2012년 제18대 대선 후보들에 대해 매일 조사하고 일일 지표도 집계했지만, 주 1회 주간 리포트를 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여론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변한다. 여론조사는 조사한 시점의 스냅(snap) 사진이다. 매 시점 촬영한 스냅 사진을 시간순으로 연속 배열하고 멀리서 보면 그 속의 움직임이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주 리포트 앞부분에 주간 단위로는 20주, 일일 단위로는 6주치 주요 지표 그래프를 먼저 제시한다. 한국갤럽 데일리 조사의 일일 지표는 사흘 이동 평균 방식으로 산출하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포인트다. 이는 일일 지표 변동폭이 3%포인트 이내인 경우는 표본조사의 특성상 비롯한 오차인지, 실제 여론의 변화인지 단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조사 과정을 잘 관리한다 해도 오차 범위를 벗어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조사업계에서는 그런 경우를 속된 표현으로 ‘데이터가 튀었다’고 한다. 가끔 데이터가 튀는 것,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표본조사의 태생적 한계다. 다행히도 2012년 한 해를 통틀어 우리의 일일 지표에서는 하루 사이에 4%포인트 이상 급격히 등락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만약 아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일일 지표가 5%포인트 이상 오르내린다면, 게다가 그런 일이 잦다면 그것은 조사 과정이 불안정한 데서 나타나는 비표본오차일 수 있다.

그럼에도 ‘튀는’ 결과를 낸 조사회사는 여론을 민감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일부 언론은 특종으로 다루기도 했다. 조사 기간은 동일한데 한쪽에선 변화가 없다 하고 또 한쪽에선 변화가 크다 하는 결과를 접하는 유권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또 ‘들쑥날쑥 못 믿을 여론조사’라는 기사의 빌미가 된다. 과거에도 전혀 없던 일은 아니지만, 제18대 대선에선 여러 언론사-조사회사의 정기조사 결과와 전례 없던 일일 지표까지 공개되어 그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한국갤럽에도 매일 조사 결과를 공개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하루하루 변동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장기 추세로 봐 줄 것을 부탁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일 3개월 전인 2012년 9월 19일, 오랫동안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안 후보의 등장과 더불어 한층 더 강해진 조사 결과에 대한 세상의 갈증을 계속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에만 공개하던 정치지표를 9월 19일부터 선거 직전까지는 주 2회 공개하기로 했다. 월~수 사흘 결과를 집계해 수요일 밤에 바로 발표하는 방식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일단 약속한 일이었기에 남은 기간에는 지속했다. 그러나 특별한 가치나 의미는커녕 수치의 홍수에 물 한 컵 더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선거 때는 끝까지 주 1회 공개 원칙을 지킬 것이다.

격랑 속 생존을 위해서는 작은 널빤지라도 붙잡고 의지하듯, 선거여론조사의 홍수 속에서 일부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사 결과를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에게 조사기간, 조사방법, 질문방식, 조사회사 등의 정보는 중요치 않은 듯하다. 지지하는 후보가 경쟁자보다 0.1%포인트라도 높은 조사 결과에는 환호하고, 0.1%포인트라도 낮은 조사 결과에는 실망하고 조사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지자들의 간절한 염원과 달리, 선거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가 통하지 않는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선 조사 추이는 다 그러했다. 보고 싶고 믿고 싶은 수치만을 맹신하다 보면 균형 감각을 잃고 혼란에 빠질 뿐이다. 수치에 연연하기보다 한 명이라도 더 투표소로 발길을 옮기도록 주위 사람을 설득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정책 방향을 널리 알려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그 후보의 당선에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후 일곱 번째 대통령 선거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여론조사 수치에 일희일비하는 현상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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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피그말리온 효과'는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이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을 말한다. 즉,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상대방은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면서 기대에 충족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